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곡괭이와 삽을 든 채 열심히 일하던 제이크가 눈을 끔뻑거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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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구를 잘못 만나 험한 일을 하는 중임에도 왕실에서 내려온 임무란 말에 아무런 불만조차 내비치지 않는 것을 보면 보기 드문 참기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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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-혈십자군? 그런 조직은 처음 들어보는군. 아니, 그보다 신전에서 그런 불온한 것들이 나왔다니…. 믿을 수가 없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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콰앙, 콰앙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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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도, 동감합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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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로 선배를 잘못 만난 후배 기사 요르드 또한 아직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에 끌려와 흙을 나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럽기 그지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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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이크마냥 왕실에 대한 충성심도 없어 임무를 맡을 이유가 없는 그였지만, 그저 존경하는 선배들이 간다고 하니 따라온 것에 가까운 그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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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나 그 또한 딱히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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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사가 된 이후 첫 임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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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름 기대감을 품은 게 아닐까 싶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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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딱히 안 믿어도 돼. 나도 남의 입에서 듣기만 한 거니까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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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친구와 후배를 이 험한 곳까지 데리고 온 장본인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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맨손으로 흙을 파내는 주제에 남들이 장비를 가지고 일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양의 일을 해내는 그였고, 급기야 맨손으로 수박 두 개를 합친 듯한 돌덩어리를 부수는 이한까지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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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사의 신분에서 땅굴에 갇힌 범죄자가 된 일동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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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좀 정상적으로 일하면 안 되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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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이크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일하는 그를 구박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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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하는 게 아니라 노는 게 아닐까 싶었기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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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어도 저놈은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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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장비가 너무 부실해서 못 써먹어. 평소에 쓰는 전용 장비가 있으면 또 몰라도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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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너 아직도 부업 뛰고 있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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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주 짭짤해. 몸 움직이는 데도 좋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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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…괴상한 놈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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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 사람의 대화에는 딱히 두서가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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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각한 사안을 다루는 것 같다가도 일상적인 대화를 섞었으며, 잡담을 주로 많이 나누는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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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한 이상할 정도로 목소리가 크기도 했는데, 자세히 집중하면 남들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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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이것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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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반응이 없네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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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다른 사람들 반응 보니까, 딱히 의심 가는 이들은 없습니다. 단지, 저희가 많이 미친 인간 취급당하는 것 같지만요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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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이상한 종교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그런가?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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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…그보단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? 제발 정상적으로 일하라니까!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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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나도 그러고 싶은데, 장비가 너무 약해서 부숴지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?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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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힘 조절을 해!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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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…쉽지 않음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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─그들이 일부러 정보를 누설하며 [죄인]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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…하지만 역시 첫술부터 배가 부를 수 없다 하였던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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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쓰읍, 걸려드는 놈이 한 놈도 없네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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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과는 영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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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한은 제 기준으로 1km 일대 전부를 감지하는 게 가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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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만 먹으면 5km 반경도 가능했지만, 그랬다간 10분도 유지하지 못하니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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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여 1km가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었고. 이를 활용한다면 훌륭한 무기가 되는 바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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덕분인지 열심히 돌아다니며 [땅굴]에 모인 범죄자들의 반응을 일일이 살피는 데 성공한 이한이었고, 결과적으로 수상한 자들을 추려내지 못했다는 게 성과 아닌 성과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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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답답하구먼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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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참아. 애초에 쉬운 임무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잖아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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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맞습니다, 선배님. 왕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이라니, 그만한 집단의 흔적을 찾는 게 어디 쉽겠습니까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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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이크와 요르드는 애초에 빠르게 진행될 일이 아니었다며 그에게 참을성을 가지라 말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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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오히려 너도 너야. 왕실 임무를 며칠 만에 끝내겠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? 웬만하면 년 단위로 이어지는 게 왕실 임무라는 건데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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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렇게 길게 끌 시간은 없어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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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어째서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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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리 애들 방학, 아니 휴교일 끝나면 나도 돌아가야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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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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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이크는 불성실한 친구가 천직을 찾은 것을 기뻐해야 할지, 아니면 왕실의 명령을 단기 알바처럼 여기는 불경한 녀석에게 화를 내야 할지를 도통 정하지 못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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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* *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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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물 테러, 혹은 학술원의 참사 등으로도 불리는 전날의 습격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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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왕급 마물과 놀의 대군이 출몰한 그 사건은 사상자가 없어서 그렇지, 사실상 왕도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테러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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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한을 비롯한 생도들, 그리고 유능한 회귀자의 능력 덕분에 피해가 전무한 수준인 거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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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게 아니었다면 피해를 추정하는 것조차 불가한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임이 분명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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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과적으로 왕도는 무사했으나, 그 과정만 보면 아찔하지 않을 수 없는 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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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, 한 번의 실수가 어떤 참혹한 미래를 가져다 줄지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그건 나라를 이끌 책임이 없는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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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-이번 사건은 왕국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도발이 아닐 수 없구나. 전력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것이고. 어떤 일이 있더라도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야.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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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왕은 분노했으며, 이번 테러를 저지른 이들을 어떻게든 엄벌을 내리란 어명이 떨어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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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위 관료를 비롯한 무수한 이들은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, 이로 인해 한동안 왕도의 뒷골목은 살 떨리는 나날이 이어져야만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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병사들이 움직이고, 기사단이 움직이며 수상한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길 반복하더니, 기어이 왕도에 숨어 있던 범죄자 중 8할 이상이 잡혀들어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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…허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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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아직도 진범을 잡아내지 못하다니!! 대체 경들은 뭘 하는 것인가!!!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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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범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고, 왕은 진노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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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딱히 왕실이 무능해서 진범을 잡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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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어 진범이 유능하다고 볼 수 있을 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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…병사들과 기사단이 움직였음에도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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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왕실이 찾은 건 테러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량의 학살 현장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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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되다 보니 왕실은 단기전일 줄 알았던 테러범과의 싸움이 장기전이 됨을 실감하며 여전히 진범 색출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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…중이었으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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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혈십자군이라, 하! 참으로 웃기지도 않은 조직이더구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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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실이 움직이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테러범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것은 수상할 정도로 유능한 어느 왕위 계승자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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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시스, 그녀는 놀랍게도 왕도를 침범한 이들에 대한 윤곽을 잡아낸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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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갈라하드가 잡아들인 위법 마법사는 하위 사제였다고 하더구나. 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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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그럼 신전이 범인이란 겁니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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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이미 병사들이 조사하여 봤지만, 신전에는 그러한 하위 사제가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더군. 허나 병사들 또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을 테지. 그 오만한 신전을 따르는 이들이 넘쳐나는데, 어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졌을까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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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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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허나 여에게 그런 건 상관없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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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그러다 천벌 받아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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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하늘은 벌을 주지 않는다. 그저 자연의 이치대로 흘러갈 뿐. 그런 것도 모르더냐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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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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…그래, 딱히 왕실은 그녀 한 사람보다 무능한 집단이라 테러의 윤곽조차 알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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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고도, 알더라도 자세한 조사를 못 한 것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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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전이니까, 광명의 빛이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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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국민이 믿고 따르는 유일종교이니 병사들은 그들을 자세히 파고들지 못할 따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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병사들조차 광명의 빛을 따르는 신도들이었으니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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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히 신전을 파헤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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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나 아이시스는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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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에게 기적이나 소원을 바라지 않으며, 오히려 신조차 이용해먹을 불경한 여자였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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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여 그녀는 신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, 기어이 정보를 뽑아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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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도 왕처럼 왕좌에 앉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, 몸소 직접 움직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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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떻게 보면 한 나라의 후계자가 보이기엔 다소 과격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, 이것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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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무능한 것들을 믿느니, 여의 두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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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시스란 군주가 가진 천성이 아닐 수 없으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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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쨌든 이토록 과격한 행동 덕분에 그녀는 왕실보다 먼저 신전과 왕실이 묻어버린 ‘과거의 잔재’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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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신전, 이 미친 종자들 중 역모를 꿈꾼 세력이 있었다더군. 허나 그 조직은 선왕에 의해 빠르게 붕괴되어 사라졌으나…. 이렇게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 같구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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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한 번 없앴는데도 말이죠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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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사상과 종교란 민들레 홑씨와 같지. 없앤다고 하여도 끊임없이 나타날 수밖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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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흠, 간단히 말해 광신도들이 광신도 했다 이거죠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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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여보단 네가 더 천벌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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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내가 왜요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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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어쨌든, 그러한 홑씨들이 다시 씨앗을 심어 신전에, …아니, 왕국 전체에 그 홑씨를 퍼트리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여의 예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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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도를 뒤엎고, 모든 불신자와 이교도들을 피로써 정화할 피의 십자를 짊어진 군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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혈십자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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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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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우습다 못해 역겨운 자들이 아닐 수 없지. 신의 이름을 팔아 제 권력과 물욕을 채우려는 역겨운 자들 주제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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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시스는 신전에 대한 아낌없는 경멸을 드러냈으나, 이한은 딱히 공감해주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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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걔들 확실히 있는 거 맞아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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혈십자이니 뭐니 하는 이름을 들은 후부터 이한은 영 떨떠름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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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신도 사상을 가진 건 그렇다 치고, 그만한 녀석들인데도 이름 한 번 못 들어본 것이 의아하기 그지없어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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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아이시스는 확언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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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있다. 그 존재를 확인하느라 알버트가 사방팔방을 돌아다녔으니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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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그 양반 어디 갔나 했더니…. 어른한테 일 좀 그만 시켜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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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여보다 정정할 자인데, 아직 쉬게 하는 건 안 될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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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참 나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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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버트의 이름을 거니 그도 더는 반박은 불가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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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다면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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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그 혈교인지 혈십자군인가 뭔가를 찾아내서 대령하란 뜻으로 보면 되나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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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슬 그녀가 내릴 명령이 무엇인지 예측한 이한의 물음이었고,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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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여가 원하는 건 두 가지다. 하나는 그 광신도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품과 그들과 협력하는 이들에 대한 명단, 혹은 흔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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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협력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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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마물을 소환하기 위해 수만 명의 범죄자를 제물로 삼았다. 그것도 왕도 한복판에서, 이는 협력자가 없고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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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, 나한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으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른 거야, 지금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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임무의 내용은 이해하겠지만,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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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조차 가까스로 흔적만 찾은 광신도의 흔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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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데 조금 싸움을 잘할 뿐인 그가 어떻게 그들을 찾아내고 여타의 증거마저 찾아낼 수 있겠는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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망망대해에 떨구고 나침반을 안 준 거랑 다를 바 없는 임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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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한으로선 이 아줌마가 스트레스가 심하여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나 싶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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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딱 봐도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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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아, 들켰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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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고얀 놈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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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악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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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의 부채가 익숙하게 이한의 정수리를 가격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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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나 평소와 다른 점은 그녀가 직접 가격한 게 아니라, 부채가 날아와서 그의 머리를 때렸다는 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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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리는 제 손목이 아플 게 뻔하니, 이제는 던지는 건가 싶었는데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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투욱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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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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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채에서 쪽지가 떨어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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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제물이 된 인골들을 조사하여 보았지. 무수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알아본 결과 인골들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으며, 어느 지방 사람인 것까지 알아내었고. 신상명세까지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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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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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하여 이들 대부분이 수감되어 있던 수감소를 크게 세 곳으로 특정 하는 것까지 가능했다. 그리고 세 곳 중 여의 직감이 울리는 곳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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툭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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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거기더구나. 한번 제대로 알아보아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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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이 정도로 알아냈으면 나 필요 없는 거 아닙니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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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체 뭘 알아내라는 건지, 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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난잡하기 그지없을 인골들을 모두 짜 맞추어 고향과 행적마저 알아냈다는 찐 광기를 목도하며 이한은 자신이 필요한가 싶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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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냥 혼자서 다 해결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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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권력이 있다 한들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더구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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약간의 씁쓸함을 머금은 그녀의 의미 모를 읊조림이었고, 이한은 그런 그녀에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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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그게 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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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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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좀 더 노력합시다, 우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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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매를 버는 의동생이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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뻐억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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뾰족한 구두를 신은 그녀의 발이 이한의 정강이를 강타했고, 아이시스는 그날 발목을 접질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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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* *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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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그러게 야만인도 아니고, 사람을 왜 때려가지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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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뭐라고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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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니야, 아무것도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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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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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한은 애써 말을 돌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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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찌 말할 수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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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이 나라 왕세녀의 발목을 다치게 했다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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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마 제이크라면 미쳤냐고 그의 멱살을 잡지 않을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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괜히 멱살잡이하다 친구의 목을 조이는 사태를 초래하고 싶지 않은 이한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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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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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선배님. 그런데 말입니다. 이 땅굴은 대체 뭡니까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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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응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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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제 와서 그걸 묻냐…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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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, 그냥 일단 따라온 것뿐인지라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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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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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한은 볼을 긁적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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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놈도 참 대책 없는 녀석이다 싶어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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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보증 서 달라 하면 해줄 녀석이네…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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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르드 데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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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이 가지니까 별 불만도 없이 따라와준 성실한 후배 기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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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실한 점도 그렇고, 실력도 괜찮은 게 자신이 가르치는 삼인방을 떠오르게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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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일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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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한은 나름 친절하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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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으음, 넌 이 땅굴이 어떤 곳 같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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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어어, 이유 없이 땅 파는 곳같이 보입니다만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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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르드는 오늘 이곳에 수감된 후로 별다른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땅굴만 계속 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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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데 이 땅굴을 파는 것에는 딱히 이유 같은 게 없어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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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토록 땅을 판다고 하면 광물 같은 것을 캐는 건 줄 알았는데, 그런 것도 아니니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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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냥 흙을 파내고 바위를 부술 뿐인 반복적인 행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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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체 이 행위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인가 싶었으며, 혹, 땅굴이란 이름대로 진짜 타국까지 이동하는 굴을 파는 건가 싶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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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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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것도 나름 재밌긴 할 텐데, 이 주변에 강이 많아서 자칫 땅굴 파다가 다 수장 당할 수도 있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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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럼 침략의 목적으로 쓰는 건 아니란 거군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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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렇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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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하면 무의미한 반복 작업을 통해 범죄자들을 계도하려는 그런-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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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니지. 계도 같은 건 신전에서나 하는 거고. 왕국에서 사람을 계도할 일이 뭐가 있을까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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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허면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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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, 마침 볼 수 있겠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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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?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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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가적인 질문을 던지려고 했으나, 이한은 요르드의 시선을 돌려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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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기에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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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고귀한 내가 어째서 이런 비루한 꼴이 돼야 한단 말인가!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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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금 전부터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지 꼴이 된 채 불만을 내뱉는 아렌이 있었고, 요르드는 저 사람에게 왜 시선을 주어야 하나 싶을 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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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-온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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콰드드득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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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!!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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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렌이 파고 있던 흙무더기에서 쏟아져나오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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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Keeee!!!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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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새, 샌드 웜!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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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샌드 웜까진 아니고, 샌드 웜 새끼들이야. 그보다 준비해라. 저것들 다 잡아야 하니까. 아, 그리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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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윽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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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무, 물지 마라! 거, 검은 어디 있나!? 검을 다오!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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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저 멍청한 새끼도 덤으로 구해주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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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…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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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르드는 삽을 든 채 샌드 웜이 있는 방향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이한에게 어처구니없는 시선을 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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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, 뭐 이런…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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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…저걸 다 잡을 수나 있는 겁니까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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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십, 아니 수백 마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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계속해서 불어나는 어린 샌드 웜의 덩어리들을 보며 요르드는 마른침을 삼켰고, 한편으로 다행이라 여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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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오늘 먹은 게 물밖에 없어서 천만다행이야…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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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다 나오는 징그럽기 그지없는 광경이었기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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땅굴, 그곳은 왕국 최대의 ‘샌드 웜 서식지’이자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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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국 최대의 이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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…가끔 샌드 웜에게 소화된 인간이 비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건 세간에 알려져선 안 될 비밀이었지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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