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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또다시 서란을 찾아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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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오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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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란색 꽃 한 송이와 함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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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서란에게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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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도 듣지 못했더구나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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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는 류서란이라고 합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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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흠, 류씨라... 알겠다. 이 꽃은 선물이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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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얼떨결에 꽃을 받아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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꽃이라고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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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뜬금없이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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졸업식이야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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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일단 받았으니 고맙다고는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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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정말 감사합니다. 예쁘네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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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. 갑을 구역까지 가서 꺾어 온 보람이 있어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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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갑을 구역이요? 밤사이에 선계 동부까지 다녀 오신 건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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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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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. 이 몸의 전송술은 선계 제일이니까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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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하긴 어제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셨었죠. 전송진도 없이 그런 게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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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지선쯤 되면 못하는 게 더 드물어지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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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때, 광장 시계탑이 뎅뎅 울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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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새 업무 시간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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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이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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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주양 진군, 저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. 재판 일정이 있거든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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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래, 늦으면 안 되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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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예, 꽃은 감사했습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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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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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할 나위 없는 안도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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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순순히 물러나서 정말 다행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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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수행원단과 함께 법정에 입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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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곧장 주양강을 발견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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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청석에 앉아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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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도 하필이면 맨 앞자리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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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그냥 할 일이나 하기로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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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쩔 도리가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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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얘기해 봤자 안 들을 게 뻔했으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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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순회 재판이 시작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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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판에 참석한 주양강은 틈틈이 깐족거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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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습적인 소액 사기꾼에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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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런 놈이 여태 살아 있다니. 말세군 말세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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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공기물파손죄를 저지른 패거리에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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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사형시켜라, 사형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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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업원의 임금을 체불한 점주에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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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우, 쓰레기! 전 재산 몰수해라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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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치안관들을 바라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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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들 필사적으로 서란의 시선을 피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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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기야 암만 봐도 무리한 요구이긴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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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국 서란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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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정숙, 정숙! 방청객들은 사담을 삼가 주십시오! 그리고 법정은 투기장이 아닙니다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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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과가 있었는지 주양강은 입을 다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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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대신에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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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을 안 하니까 지루한 모양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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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 입장에서도 차라리 다행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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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어도 법정은 정숙해졌으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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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틈에 재빨리 재판을 진행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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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재판이 모두 끝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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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내 찾아 온 점심 시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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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칼같이 기상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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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서란 일행에게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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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점심은 내가 대접하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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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니, 저희는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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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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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부담스러웠지만 거절하기도 그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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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 일행과 주양강은 근처 요리점으로 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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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리의 맛 자체는 굉장히 훌륭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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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이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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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맛있네요. 그런데 이런 맛집은 어떻게 아셨나요? 혹시 전에도 이 도시에 방문한 적이 있으신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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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잠결에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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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오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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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고개를 끄덕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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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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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리나 마저 음미하기로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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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서란의 접시에 요리를 올려 주며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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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많이 먹거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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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감사합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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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잘 먹는구나, 더 주마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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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삼 인분 가량을 더 먹고 나서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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법원에 돌아온 서란은 곧장 담당자를 호출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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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재판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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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담당자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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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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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오후에는 재판이 3건뿐이라고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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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예, 그렇습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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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일정 되게 빡빡하다고 하지 않았어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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담당자가 대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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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다들 항소 취하하겠다며 난리입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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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혹시 비속불박진군 때문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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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마도 그럴 겁니다. 소문이 쫙 퍼졌거든요. 비속불박진군께서 법정을 참관하신다고. 찔리는 게 있는 항소인들이 대거 도망치고 있습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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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이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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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찔리는 게 있는 항소인이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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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, 모르시는군요. 순회 재판을 받는 이들 중 대다수는 항소 좀 한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. 그럼에도 당장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항소하곤 하죠. 어차피 순회 판사는 비정기적으로 방문하니까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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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렇군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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담당자는 심야 재판도 모두 취소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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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3건의 재판을 잘 처리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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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후에는 퇴근해서 숙소로 돌아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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숙소 문이 저절로 열리며 불청객이 등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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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꽃 한 송이를 내밀며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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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혹시 흰색 꽃도 좋아하느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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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대답하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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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, 꽃을 건네받지도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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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저 주양강을 응시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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솔직히 좀 불쾌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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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생아 운운하던 첫 만남이 그랬고, 자기 멋대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행실 또한 민폐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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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지 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도 아니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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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애써 예의를 갖춰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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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제가 재판 때문에 좀 피곤해서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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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런, 피곤하면 안 되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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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? 목욕이 하고 싶군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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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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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, 그러면 함께 들어가자꾸나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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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말문이 막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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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처구니가 없어서 기절할 것 같아서 그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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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나랑 장난치나 싶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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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그런 감정은 주양강과 눈을 마주친 순간 사라져 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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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자색 용안에는 기대감만이 가득 차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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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저 그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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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국, 서란은 주양강과 함께 욕조에 들어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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석재로 만든 욕조는 꽤나 커다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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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반인반룡은 목욕물에 몸을 담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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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아직도 꽃을 손에 들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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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말없이 주양강을 바라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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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옥 같은 피부와 흑단 같은 머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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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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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투적인 표현은 하기 싫지만, 정말 그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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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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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런데 정확히 몇 살이더냐? 겉보기로는 백 살 조금 넘는 듯한데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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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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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반인반룡이기도 하고, 격차도 만만치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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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 들켰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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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이 대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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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올해로 104세입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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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역시 그랬구나. 그러면 여의주를 완성한 건 몇 살 때였느냐? 나는 75세쯤 완성했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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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90세일 겁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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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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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리는 닮은 점이 참으로 많구나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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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런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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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렇고 말고. 종족도 같고, 성별도 같고, 심지어 타고난 자질마저 비슷하지 않느냐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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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별달리 대답하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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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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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손에 든 꽃을 만지작거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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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다가 불현듯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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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혹시 물어보고 싶은 건 없느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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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예를 들면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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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무거나, 수행에 관해서든 뭐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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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고민하다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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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러면, 순환 의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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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순환 의식? 아, 윤회 의식 말이구나. 괜찮으니 어서 물어보거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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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의식을 치르면서 혼백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. 주양 진군께서는 3000년 만에 지금의 경지까지 도달하지 않으셨습니까. 어떻게 그 정도로 빨리 경지를 올리면서 혼백을 온존하신 겁니까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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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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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의식 도중에 법력을 세심하게 제어하면 된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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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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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어, 그러니까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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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여차저차 설명을 이어 나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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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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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다른 주제에 대해서 질문하기로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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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이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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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혼백의 손상을 치료하는 게 가능한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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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놔두면 저절로 낫는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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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자연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된 혼백을 인위적으로 치료할 수단이 있나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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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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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무래도 정확한 명령어를 입력한 듯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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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결과값이 나오길 기다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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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참을 고민하던 주양강이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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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내가 아는 바로는 없구나. 하지만 진행 중인 붕괴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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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게 어떤 방법인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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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명계로 가면 된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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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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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명계요? 죽으면 가는 그 명계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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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래, 명계에서는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.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말이지. 영혼을 짓뭉개든 육신을 토막 내든 마찬가지야. 망자는 생전의 모습으로, 생자는 명계에 발을 디딘 그 모습 그대로 재생될 뿐이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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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러면 혼백이 붕괴되는 것도 멈추겠네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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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고개를 끄덕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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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래, 녹기 시작한 얼음을 냉동고에 집어 넣는 격이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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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꺼내면 다시 녹겠네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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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무래도 그렇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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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냥 이승에서 죽기 VS 저승에서 좀 늦게 죽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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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택지가 양쪽 다 거기서 거기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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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명계에 대한 호기심은 좀 생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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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다시금 주양강을 바라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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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기보다 아는 게 많은 여인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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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잡을 수 없는 여인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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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이답지 않게 순수한 여인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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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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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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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다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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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괜찮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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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이 주양강의 젖무덤 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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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명치에 있는 그 흉터는 뭔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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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거 말이냐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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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예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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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양강이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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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글쎄, 기억나지 않는구나. 아주 어렸을 적에 생긴 모양이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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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모르시는군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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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래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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욕실의 불이 확 꺼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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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은 광원이라곤 제각기 발광하는 서란과 주양강의 사슴뿔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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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의 자주색 용안에 주양강이 담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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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굴도, 가슴팍도, 언제까지 들고 있을 작정인지 모를 흰색 꽃도 모두 청자색으로 물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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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란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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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제가 첨천답층진군의 사생아가 아니라고 하면 믿으실 건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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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나한테까지 애써 숨길 필요는 없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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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러실 줄 알았습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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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금 불이 켜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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