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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고? 응, 지랄하지마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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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의점 알바생 김지우는 자기개발서를 덮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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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, 사회가 잘못된 거지’라며 감언이설을 내뱉는 책은 수없이 많이 봐왔지만, 이렇게 읽으면서 대놓고 짜증을 유발하는 책은 또 처음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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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5시, 맨날 지각을 일삼는 빌어먹을 야간 편순이와 교대하기까지 5시간이나 남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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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학가에 위치한 편의점이라고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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젊은 꼰대들을 상대하느라 벌써부터 진이 다 빠져버린 김지우는 카운터 앞에 앉아 바닥 타일의 패턴을 분석하며 멍을 때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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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소리가 들린 건 그 시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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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블로프의 개처럼 잘 훈련된 김지우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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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어서오세요! CU입니다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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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 이 말만 몇 번째 반복했는지 모르겠다. 가상현실게임의 NPC도 이보단 다채로운 대사를 읊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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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계산해드릴게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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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지우는 극심한 현타와 함께 손님이 건네준 ‘삼각김밥(小)’를 바코드에 찍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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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는데 여성은 하얗고 고운 손으로 동전을 건네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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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같은 시대에 동전을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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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든 김지우는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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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곳에는 여신이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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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플한 하얀색 티와 하이웨스트 청반바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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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쭉한 팔다리와 백옥같이 하얗고 투명한 피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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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검은색인데도 눈동자 색은 왜 이리 또 예쁜지, 김지우는 그녀의 사슴같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시선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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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품 크로스백 대신 베이지색 에코백이, 진한 향수향 대신 코를 간질이는 상큼한 비누향이 여성의 수수함을 강조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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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번호라도 물어볼까? 백퍼 남친 있을 것 같은 비주얼인데..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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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지우는 외모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, 현재 입고 있는 편의점복이 부끄러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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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망설임이 길어지니 여성에게서 먼저 퉁명스러운 말이 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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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계산... 안 해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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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 네네! 근데 이거 원플러스 원이라서, 똑같은 제품으로 하나 더 가져오실래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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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진짜요? 다행이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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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이 손뼉을 짝 치며 몸이 90도, 180도 돌아가 다시 삼각김밥 진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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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지우의 눈이 여신의 옆태와 뒤태를 포착해버린 순간, 그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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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다가 목소리마저도 순수한 아이처럼 앳되고 부드러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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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가진 사람은 정말 다 가졌구나. 부럽다...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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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사각형의 작은 건물에 갇힌 자신과 달리, 밖에서는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며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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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리창의 비친 김지우의 모습은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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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순간, 밖이 소란스러워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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번화가에 소란스러움이야 항상 있었으니까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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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설마 저 여자가 진짜 연예인이라도 됐었나?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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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문은 길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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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자는 맞지만 대상이 틀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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건물 밖에서 편의점 유리창을 기대고 서 있는 트윈테일의 작은 어린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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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지우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슬쩍 고개를 돌려 편의점 안쪽을 바라본 소녀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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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미친! 노나메잖아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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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의점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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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한국에도 몇 명 없다는 노네임의 5개월 이상 구독자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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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는 나메가 롤 마스터를 찍어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전부터 구독하고 있어야 달성할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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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네임 팬카페 부매니저 ‘다연산초고성능미소녀AI’ 김지우는 카운터를 박차고 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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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기, 삼각김밥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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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잠깐만요 여신님! 이따가 창고에 가서 꺼내드릴게요! 조금만 기다려주세요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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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네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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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편의점에 출몰한 여신이 대수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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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보다 위대한 창조주격인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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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한테 기다려달라고 하는지 모를 정도로 김지우는 유성 싸인펜을 챙겨 쏜살같이 편의점을 빠져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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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안이 벙벙해진 여성은 비어버린 카운터를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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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기요...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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꼬르륵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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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의 배에서 나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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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조현상은 정말로 무섭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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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동안 혼자 걸어다녀도 눈길 하나 주는 사람 없길래 그냥 안심하고 번화가로 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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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연한 일이다. 어지간히 유명한 연예인들이 아닌 이상 타인에게 관심없는 현대인들에게 주목받기 쉽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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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다가 나는 키와 몸집이 작아 상대적으로 시야에 덜 띄는 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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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이전보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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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갑자기 남녀 한두 명이 내게 조르르 달려와 사진과 싸인을 부탁해서 흔쾌히 들어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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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를 암묵적 허락으로 알아차린 건지, 아니면 누군가 팬 행세를 하길래 대충 유명한 사람인가보다 하고 무작정 몰려든 거지, 사람들의 깊은 마음 속을 알 수가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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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그중에는 진심 어린 팬, 시청자들도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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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정말 여기다가 싸인을 하라고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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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이, 공책, 더 나아가 전공책에다가 하는 경우는 있었어도, 누군가가 입고 있는 흰색 셔츠 위에 싸인해달라고 부탁받은 건 처음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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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유성싸인펜을 들고 대충 남성의 등에 ‘NoName’ 여섯 글자를 필기체로 휘갈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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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감사합니다! 평생 가문의 가보로 삼을게요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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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지우씨까지 싸인을 끝마치고 나니, 편의점 앞에서 우연히 만난 단니엘과 함께 인파를 헤집고 호다닥 빠져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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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깃집과 술집이 몰려있는 조금 한산한 골목길에 접어들어, 니엘이 먼저 말을 꺼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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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여긴 어쩐 일이야 나메야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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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다연 언니가 불렀거든. 6시 전까지만 오면 낙곱새 사준다고 해서 28동에서 바로 달려왔어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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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따라 질의응답에 참여한 교수들이 유독 많았다. 골드바흐의 추측이라는 유명한 문제를 다루어서 그런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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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스케줄이 두 시간 반까지 연장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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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나로서 우다연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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낙곱새라니, 전생에서도 전전생에서도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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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니엘과 함께 도망쳐 온 장소도 다연의 교양수업 조원들이 모여있을 낙곱새 가게 앞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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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생각해보니까 언니도 다연 언니랑 인관심 같은 조라면서? 근데 조원들은 어디가고 왜 아까 혼자 편의점에 있었어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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니엘의 말대로라면 교양이라고 읽고 조원들과 이곳저곳 놀러다니는 수업이라 쓰는 ‘인간관계의 심리학’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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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모임이 파투났나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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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게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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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니엘의 양손에는 아까부터 먹지못한 삼각김밥이 들려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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건조하고 갈라진 그녀의 분홍빛 입술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, 마침 가게 안에서 우다연이 문을 열고 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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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나메야 왜 이제 와! 우리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! 옆에는... 단니엘...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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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미안, 나 갈게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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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잠깐만 니엘씨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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황급히 발걸음을 돌려 자리를 뜨려는 니엘의 손목을 다연이 재빠른 반응속도로 잡아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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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의 손에 힘이 빠져 삼각김밥이 돌바닥에 떨어졌고, 모양이 완전히 뭉개져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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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의는 아니었다는 듯, 다연이 서둘러 삼각김밥을 주워서 먼지를 탈탈 털어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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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리저리 잡고 돌려보아도 먹을만한 수준은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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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앗! 미안해요 새로 하나 사줄게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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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냥 돌려줘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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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니 요 앞에서 사준다니까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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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냥 돌려달라고오오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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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곤조곤하게 말하다가 음량을 최대로 높인 것처럼 니엘이 소리를 꽥 질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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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어... 응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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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덜너덜해진 저녁이 다시 니엘의 손으로 넘어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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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어진 다연이 떠나려는 니엘의 앞을 가로막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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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니 뭐 저희 힉스 스튜디오하고 바크 분들 사이가 안 좋은 건 알아요. 근데 니엘씨는 거기 정식 PD도 아니고 그냥 1학년이니까 동아리 개념처럼 즐기는 거 아녜요? 입부도 두 달 전에 했다면서. 근데 왜 이렇게 과몰입해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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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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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무슨 말 못 할 이유로 저를 사적으로 싫어할 수는 있죠, 그래요. 하지만 조모임은 참여해야 할 거 아니에요. 같이 저녁 먹기 싫으면 최소한 얼굴만이라도 비춰서 보고서에 제출할 사진만 같이 찍어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에요? 참석하는 시늉만 해달라는데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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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다연이 씩씩대며 그녀에게 해명을 요구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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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게 입구에서 일행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여성들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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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다연씨 안 들어오고 뭐하고... 아 니엘씨 어서와요! 왜 이제 온 거예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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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 어색해하지 않도록 그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시늉을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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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말해봐요. 팀플 수업이 싫었으면 드랍을 하든가, 지금 니엘씨의 이기적인 행동이 남들 피해주고 있다는 건 자각하고나 계세요? 당신 하나 때문에 왜 이 좋은 수업을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면서 들어야 하냐고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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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조장님은 다시 들어가 계세요. 제가 니엘씨랑 단둘이 잘 말해볼게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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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칫 감정 싸움으로 번질까 남성이 미소를 장착하고 두 여성의 사이를 급히 떼어놓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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줄곧 입을 다물고만 있었던 단니엘이 한마디 거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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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왜 내 처지는 아무도 몰라주는건데. 왜 내가 항상 맞춰줘야해...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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니엘의 사슴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이 고여 뚝뚝 흐르기 시작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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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심을 자극하는 행태에 다연이 더욱 열이 뻗쳐 ‘여우년’이라는 말이 나오려다가 입모양으로 그친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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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면 다연을 말리러 온 남성에게 효과는 굉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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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다연이 니엘에게 가지 못하도록 잡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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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래서 그 처지가 뭐냐고요. 뭘 알려줘야 우리들이 니엘씨한테 맞춰주든가 하지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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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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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오 답답해! 몰라 알아서 해요... 나 조장 안 할래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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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슴을 팡팡 두드리다가 결국 우다연이 먼저 GG를 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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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쪽으로 갈라지는 두 사람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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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성과 내가 누구를 따라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단니엘이 해답을 내려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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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따라오지 마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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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무래도 지금 낙곱새를 먹었다가는 체할 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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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잘 먹네 나메야! 1인분 추가로 안 시켜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...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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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와 어떻게 먹는 모습도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...? 완전 천사다 천사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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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근데 니엘씨 진짜 안 따라가봐도 돼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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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도 안 체하고 잘 먹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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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연이 냅킨으로 내 입가에 묻은 빨간 낙곱새 국물을 닦아주며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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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따라오지 말래잖아요. 게다가 저 온종일 굶어서 배고파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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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래그래 많이 먹어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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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연이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통 크게 쏘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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테이블에 아직 다 치우지 않은 술잔들, 거기서 풍겨오는 알코올향 때문에 괜히 한번 입맛을 쩝쩝 다져보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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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동에게 음주를 허락해주는 국가는 왜 없는 걸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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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오늘 많이 바빴어? 너같이 어린 애를 그렇게 오래 붙잡아둬도 되는 거야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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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러게 말이에요. 그냥 증명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확 스위스로 뜰까 보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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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스위스? 그게 무슨 소리니 나메야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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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엊그저께인가. 보이스피싱인줄 알았는데 스위스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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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 관련된 내용으로 뉴스가 줄줄이 보도되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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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전 세계적으로 스위스를 향한 인재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, 최근 온라인 상에서 스위스 정부의 기밀문서 ‘더 그레이트 제너레이션(위대한 세대) 리스트’가 공개되면서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. 젊은 인재들이 국적을 버리고 이민하게 된 배경에는, 외국의 핵심인재 100명을 영입하기 위한 스위스 정부의 대대적인 계획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는 주장입니다.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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맞아, 전화통화에서도 내게 ‘더 그레이트 제너레이션’이라는 말을 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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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개개인에게 적게는 5억원, 많게는 100억원까지 부를 만큼 예산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.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었습니다. 한국 외교부는 ‘주요 파트너 국가와의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행위’라며 곧바로 항의 의사를 표명하였고 미국 백악관에서도-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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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뉴스가 조금 잘못됐네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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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응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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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한테는 백억이 아니라 천억을 부르던데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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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자가 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지 ‘0’을 하나 빠뜨린 모양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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빨간 국물을 휘적이며 마지막 남은 새우살을 내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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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위스에서는 낙곱새를 안 파려나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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