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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때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바이오·의료 스타트업 CEO 백호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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USC 비터비 공과대학에서 미시연성학이라는 전공을 살려, 현미경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세포관찰 질병진단 사업을 이끌어나갈 젊은 경영인으로 지역뉴스에 얼굴이 실리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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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으며, MBA 과정까지 수료했을만큼 회사 경영에 무지한 것도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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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지 시대를 아주 조금 잘못 타고났을 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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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년부터 쭉 이어진 미국 지역은행의 연쇄적 파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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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행하게도 그 첫 주자는 실리콘밸리 은행이었으며. 그는 약속받았던 투자금은 물론이고 은행에 맡겨놓았던 예금까지 싸그리 탈탈 털려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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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원 35명의 급여를 주지 못해 결국 유망있는 회사는 파산에 이르렀고, 그는 거액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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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일평생을 갈아 만든 지식은 백호찬의 자녀와도 같았기에, 핵심기술과 함께 기업을 넘겨준다는 제안에는 단칼에 거절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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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최후의 최후까지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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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국 미국으로 돌아갈 자신(자금 또한 없었다)이 없었던 백호찬은 서울 외곽의 싸구려 원룸에서 지내야만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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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지막 동아줄은 내려오듯이, 잠 못 이루는 어느 날 밤, 자신이 그토록 싫어해 마지않는 할아버지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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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저저저거 나도 옛날에 산 적이 있었지! 그 때 그 썩을 놈의 랜섬웨어에 걸려가지고! 뭐라구냐 난생 처음 들어보는 비트코인인지 고인인지 뭔지 모르는 걸 달라니깐 어찌어찌 구하긴 했는데 시간이 지나버렸다고 내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다 삭제해버렸당께! 정내미도 없는 썩은 놈들...!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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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동은 신속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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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직접 비안도까지 찾아가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고, 아니나 다를까 4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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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봉곤 훈장은 3천억원의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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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엉덩이가 그렇게 올라가면 쓰것나! 빨리 안 내려가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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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으으으윽! 히... 힘들어요! 다리 아파서 더 못 하겠어요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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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놈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! 여기서 자세 안 잡히면 마보 한 시간은 더 추가할 줄 알아라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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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히히이이잉...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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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 댓바람부터 아린이와 민우는 백봉곤 훈장의 감시 아래에서 열심히 스쿼트를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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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호찬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강압적이긴 해도 폭력을 동반한 훈육은 일절 하지 않는 분이라며 어제부터 꾸준히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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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초리를 든 날이 하필 어제가 처음이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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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가 맞은편 유리조각을 담은 하얀 쓰레기 봉지를 가리키며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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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애들이 어제 옷장 안에 숨어있다가 실수로 우리 할아버지가 정말 아끼시는 도자기 하나를 깨먹었어. 맞아, 그래도 때려서는 안 되는 거겠지만... 사실 말로 한다고 설득될 분이 아니잖니. 너도 어제부터 봐서 고집 알잖아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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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호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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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새 아이들은 스쿼트를 끝내고 흙바닥에 벌러덩 누워 얼음물을 꿀떡꿀떡 삼키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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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지금은 2500억으로 줄긴 했지만 괜찮아. 세금 떼도 1200억이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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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도 아이들과 똑같이 목이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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벤처캐피털 임원진들 앞에서 멋지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과거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농부 1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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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에어컨도 없으니까 많이 덥지? 너도 하나 먹을래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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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자신의 방에서 얼음물을 가져오는 겸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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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어디서 났어요? 부엌 냉장고에 없었는데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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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내 방에 냉장고가 하나 더 있어. 할아버지한텐 이르지 마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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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아이들이라서 언제까지나 나물만 먹고 살 수는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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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팸, 치킨너겟, 아이스크림, 냉동 피자 등등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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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이주일에 한번씩 육지에 들려 먹을 것을 리필해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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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하필 아린이를 입양한 이유는 뭐예요 그럼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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꽤 오랫동안 우리 메를린 보육원을 관찰하고 있었던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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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체모를 할아버지의 ‘시험’을 통과해야 한다면 분명 재능있는 아이들로 고르지 않았을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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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냥 나랑 성이 같으니까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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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...? 회사가 왜 망했는지 알 것 같기도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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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야...! 그리고 아직 민우하고 아린이는 정식으로 입양한 것도 아니야. 그냥 돈만 무사히 받으면 어른이 될 때까지만 같이 살다가 100억원 정도 증여해주기로 했거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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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진짜 당신 악마네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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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민우가 먼저 나한테 제안한 거야 오해하지마. 아린이도 동의했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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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씨가 같은 아이를 고른 이유는 나름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이 배경에 있었다며 혼자 발끈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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뭐 어쩌라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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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결과가 지금 이건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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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두가 상처받은 세계의 완성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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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봉곤 훈장은 아이들이 그저 답답했고, 백호찬은 목이 타들어갔으며, 민우와 아린이는 하루라도 빨리 이 섬을 떠나고 싶어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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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헤으윽... 나메야 나 물 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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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여기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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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고마워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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꿀꺽꿀꺽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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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무것도 먹지 않아 쫄쫄 굶었을 아린이의 배가 올챙이처럼 부풀어올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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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러다 배탈나는게 아닐까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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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백아린. 너 그러면 돈 벌려고 여태껏 연락도 없이 이 섬에 있던 거야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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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웅? 혹시 삼촌이 말해줬어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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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니까 왜 그랬어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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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나메랑 같이 살려면 돈이 많이 들 거니까! 집도 사야지, 교복도 사야지, 약도 사야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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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 생고생을 했어? 돈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아린아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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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니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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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새 물병 하나를 다 비운 아린이 쏘아보며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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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돈이 없으면 불행해. 엄마 아빠가 없어도 불행해. 뭐든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아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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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너..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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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럼 적어도 내가 선택해서 버릴 수 있는 거잖아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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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자기 아린의 홍채가 빨갛게 물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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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건 분명, 마나탈진의 전조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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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말을 끝으로 아린은 평상 위로 쓰러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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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색은 안 했지만, 그녀는 이미 한계까지 내몰려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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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호찬은 부엌에서 얼음을 비닐에 담아와 아린이의 머리 위에 얹혀 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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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미 몇 차례나 있었다는 일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움직임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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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이상으로는 아이들을 혹사시킬 수 없다. 꼭 때리는 것만이 아동 학대는 아니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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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혹시 훈장님이 싫어하는 말이 있을까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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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싫어하는 말씀이야 셀 수도 없이 많으시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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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 중에 한 단어만. 제일 싫어하는 거라면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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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무래도 아카데미가 아닐까? 아카데미 때문에 옛날에 운영하시던 서당도 망해버렸고. 여기 마력발전소 기지국 설치한다고 두리도 주민들 내쫓아버린 사람들도 다 아카데미 사람들이라고 했었으니까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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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잘 알겠어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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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야! 뭐하려고 너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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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가하게 부채질이나 하면서 산책을 즐기는 훈장을 노려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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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나는 평상에서 내려와 그의 앞길을 막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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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니 지금 뭐더는 짓이여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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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도 그 시험이라는 걸 보게 해주세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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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시험? 니가 뭔 자격으로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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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저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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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앞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는 간판이 때마침 눈에 들어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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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堂書名正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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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정명서당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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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속도 과연 그러할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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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서당 아이들도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마당에 아카데미 출신인 제가 못할 것도 없죠. 안 그래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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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... 아카데미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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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네, 서당같은 유사교육 기관이랑은 다른 진짜 아카데미요. 그래서 영 자신이 없으신가봐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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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발은 꽤나 성공적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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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할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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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재 위에는 천재가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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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박학이독지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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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하게 하며(博學而篤志),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에서 생각하면(切問而近思), 인이 그 가운데 있다(仁在其中矣)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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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미 실리콘밸리에서 수없이 많은 천재들을 봐온 백호찬은 그 재능의 편린을 처음부터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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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온고이지신...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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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옛것을 알고서 새로운 지식을 얻으면(溫故而知新), 가히 스승이 될 수 있다(可以爲師矣)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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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를 경청하는 백봉곤 훈장의 눈알도 튀어나오기 직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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논어(論語)의 600문장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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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분에 10개씩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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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미친 지금 저걸... 1시간만에 다 외운 거야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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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호찬은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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약 20년 전, 방학 때 할아버지 댁에만 오면 강제적으로 시키는 지옥의 논어 암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. 몇 년이나 걸려도 끝끝내 외우지 못한 걸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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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석한 백민우마저도 나메를 괴물 보듯 바라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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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 구절을 들려주면 나머지 구절이 기계적으로 튀어나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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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의미까지 완벽하게 해석해낸 나메를 보고선 백봉곤 훈장은 책을 덮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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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다음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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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도 아이들이 구경해보지도 못한 2단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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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아버지가 넌지시만 알려주었던 본 시험의 정체가 이제야 드러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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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정성은 하늘의 도리다. 애쓰지 않아도 절로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절로 터득해, 요란스럽게 굴지 않아도 저절로 도리에 맞는 이가 성인이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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탁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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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태나무 지팡이가 땅에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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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, 다만 중용은 중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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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기 가득한 목소리가 사라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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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정을 절제하는 것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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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, 그는 지금 감정을 한 군데로 몰아세워넣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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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글자글한 주름이 마치 하나의 비옥한 토양이 되어 이윽고 새싹을 틔워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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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에는 자그마한 진동이 일었지만 그의 상반신은 부동(不動)을 유지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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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내 푸른 초목의 빛깔을 띤 오러가 훈장의 손바닥에서 피어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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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오러의 외적 발현...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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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게 뭐예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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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호찬은 믿을 수가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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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러를 극한으로 다루는 자는 오러를 신체 외부에도 두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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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건 살아있는 인간의 몸에서 배를 갈라 직접 심장을 꺼내는 것과도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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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십 년의 노력이 뒷받침되어도 결코 장담할 수 없는 경지일지언데, 백봉곤 훈장은 여기서 아예 한 술 더 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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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글거리는 새싹은 빠르게 자라 가지를 뻗고 잎이 나고, 단풍이 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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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단풍잎 하나가 따로 떨어져 나와 그의 손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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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벽하게 이어짐이 없는 독립된 오러 공간을 구축해보아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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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똑같이 따라해보거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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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 백봉곤 훈장의 주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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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호찬은 절망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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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부터 그는 자신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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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기야 지난 몇십 년간 타인 보듯, 아니 그보다 못한 수준으로 대하였는데 최근 몇 개월 비위 좀 맞춰줬다고 순순히 내놓는 것도 이상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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훈장이 콧김을 흥 하고 내뿜자 오러는 말끔하게 사라져 없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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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줍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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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무 정자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산들바람이 그의 흰 수염을 타고 미끄러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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끄응차 소리와 함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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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허...!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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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부좌를 한 나메의 양손에는 각각 사과나무가 열려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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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렇게 쉬운 기교는 이미 어릴 때 젠가하면서 다 떼가지고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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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까 백 훈장이 보여주었던 나무보다 훨씬 많은 잎사귀들이 피어났고, 또 수많은 황금사과들이 열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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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메가 새끼 손가락을 까딱이자, 수십개의 금빛 사과 열매들이 떨어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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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, 오히려 중력을 거슬러 하늘 위로 올라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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점점 멀어져가는 빛의 입자들을 바라보며 나메가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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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헤스페리데스 님프들이 지키는 황금 사과나무. 훈장님께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조금 아시려나 모르겠네요. 아니면 혹시 아이작 뉴턴은 아세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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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참이나 하늘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백봉곤 훈장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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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러를 완전히 거두어들인 나메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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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자왈,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. 똑같이 따라해보세요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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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어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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